영화 <파묘>를 봤습니다. 공포물을 워낙 좋아하지 않아서 많이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괜찮았습니다. 실은 먼저 본 주변 지인들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집에서 혼자 보는 VOD보다는 차라리 극장에서 관객들이랑 같이 보는 게 낫다, 깜짝 놀라는 신들은 생각보다 없다, <검은사제들>보다 안 무섭다 등등이 있었습니다. 😁
보고 나니 이 영화는 '지킴'에 대한 이야기구나 싶더라고요. 누군가는 자신의 아이를, 누군가는 관계를, 누군가는 끝없는 부와 권력을, 누군가는 평화를 지키고 있었어요. T형 인간이라 그런지, 옳고 그름을 떠나 왜 그렇게까지 지킬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잃고 싶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죠. 잃고 싶지 않다는 건 소중하다는 의미고, 소중한 이유들은 모두 다르지 않을까. 사랑일 수도 있지만, 기대이기도 하고, 탐욕이기도 할 어떤 것. 무엇이든 가능하면 좋은 방향이었으면 좋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영화 속 네 사람(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의 직업이 타인을 위한 것이라는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어쩐지 공포물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전쟁영화가 결국은 반전영화라는 걸 떠올린다면 이런 생각도 특별한 건 아니겠죠.
사실 저는 장재현 감독의 데뷔작 <검은사제들>을 보지 않았는데요. 오컬트 영화를 무서워해서였어요. 아마도 중학생 때 보았던 <엑소시스트>나 <사탄의 인형>, <오멘> 같은 영화의 영향이었을 거예요.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악마에 빙의된 인물들의 기괴한 움직임과 예측불가한 목소리들은 생생하게 기억나요. <호기심천국>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고요. 낯선 상황들은 설명되지 않음, 불확실성,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대체됐고, 그것이 불안해서 무서웠던 것도 같습니다.
그러다 뮤지컬 <검은사제들>을 보고 오컬트 장르를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되었어요. 영화와는 다른 뮤지컬의 해석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극에 등장한 모두가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너무나도 애를 쓰고 있었어요.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제 안의 의심과 절대적 존재를 향한 질문을 딛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기어이 생명을 구한다는 것. 종교를 떠나 인류애를 느꼈다고 할까요. 당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라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에 더 몰입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묘>가 덜 무서웠던 건 공포에 가려진 다양한 의미와 감정을 더 찾으려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어요.
영화를 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월요일이 다 갔습니다. 구구절절 뉴스레터도 늦어졌네요. 내일 아침에 이 레터를 확인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어요. 내일, 3월 5일은 경칩이에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절기입니다. 이때가 되어야 비로소 개구리처럼 저도 깨어나는 것 같아요. 3월도 잘 부탁드립니다.
2주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