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제게는 함께 산 지 2년 된 강아지가 있습니다. 제주도의 쓰레기 마당에서 2021년에 태어나 구조된 마당견입니다. 따뜻하고 위트있고 유연한 구조자 분들 덕분에 만나게 된 친구예요. 옹기종기 모여있는 흰색과 갈색 검은색의 털들, 말랑하게 접힌 수제비 귀, 갈대처럼 휘날리는 꼬리가 매력입니다. 저는 이 친구를 '산초'라고 불러요. 네, 저의 '최애'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저는 이 작품이 해석하는 산초가 참 좋아요.) 무엇보다도 제가 고립된 삶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인데요. 산초는 '돈키호테'로 부르는 게 더 나았나 싶을 정도로 모험심이 강한 친구입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낯선 곳에서도 주도적으로 움직여요. 남들은 가지 않는 곳에 어느새 훌쩍 가서 우뚝 서있기도 해요. 마치 자기를 찾아보라는 듯이요.
그런 친구 덕분에 저는 하루에 5km씩 걷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동네 단골 가게 사장님들과도 친해졌어요. 친하지 않더라도 스몰토크가 두렵지 않아졌고, 평소라면 접점이 전혀 없었을 분들과도 자주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도움을 주고받는 일에 마음의 짐을 많이 덜었습니다. 실외배변견이라 하루에 2번 이상의 산책이 필요하고 산책을 다녀온 후 저의 체력 보충 시간도 필요해지다 보니, 지난 2년간은 공연관람 횟수가 상당히 줄었더라고요. 2년 사이 저도 조금은 익숙해지고 체력도 제법 올라와서 다시 평일 저녁 공연을 챙기고 있는데, 소중한 것들을 적은 에너지로 나눠 써야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네요. :)
2월 16일은 산초를 입양한 날이었습니다. 기념일을 특별히 챙기는 편이 아니라서, 주변 반려동물 보호자님들이 '입양절'에 맞춰서 하는 일들이 신기해 보이기도 했어요. 가족사진을 찍는다거나 주변 친구들에게 간식을 나눠준다거나 여행을 간다든가 하는 것들이요. 극 I에 가까운 사람이라 더욱 그랬던 것도 같은데요. 올해는 적은 액수를 기부하기로 했어요. 가족과 친구의 생일은 챙기면서도, 저와 관련된 기념일을 그저 그런 날 중 하나로 넘겼던 시간이 많았어요. '기념'이 '오래도록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한다'라는 뜻인데, 무엇도 기념하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것을 잊는다는 이야기더라고요. 그래서 작년부터 제 생일에 날짜와 같은 금액을 기부하기 시작했고, 산초와의 날에도 그렇게 하려고요. 과거에는 적은 액수라는 이유로 쉽게 포기했는데요. 크고 작음이 어디 있나, 이마저도 자기검열이구나 싶더라고요. 올해는 포인핸즈에 일시후원을 했어요. 더불어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흘려보내지 않고 잘 기억해두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했습니다. (기부처가 금방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어떤 날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한다는 것, 기념이라는 이름의 사랑이 아닐까 싶어요. 천혜향이던 아이를 만나 산초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그런 마음이었겠죠. 올해 <맨 오브 라만차>가 재공연되는데요. 다시 <맨 오브 라만차>를 보면 이전과는 다른 감정으로 가득할 것 같아요. 어떤 돈키호테가 오느냐보다 어떤 산초를 만나게 될지를 더 기대하게도 되구요. 단 하나의 선택이 상당히 많은 것을 바꾼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참 놀랍습니다. 😆
2주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