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역시 '학전'이었습니다. 정재일 콘서트에서,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뉴스에서, 단톡방에서. 하지만 저는 학전과 김민기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깊게 받은 세대는 아니라, 학전 폐관 소식이 크게 와닿지 않았던 것도 같습니다. 학전 블루과 그린에서 본 작품도 몇 개 되지 않았고요. 그런데 살펴보니 그냥 넘어가기엔 많은 의미가 담긴 작품이었더군요.
2003년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저는 전주의 작은 문화예술 잡지사의 인턴이었고, 어쩌다 선배들의 서울 출장에 동행하게 되었어요. 왜 갔고, 무슨 일을 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네요. 그런데 공연을 하나 봤다는 것만큼은 기억했어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는 느낌뿐이었는데요. 그게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었다는 사실을 '학전 폐관' 소식이 들리고서야 기억해냈습니다. 뮤지컬이라는 것 자체를 처음으로 접한 작품이었는데도 말이죠. 2009년에는 학전그린에서 뮤지컬 <빨래>를 봤네요.
그리고 2011년 연극 <삼등병>을 봤습니다. (지금은 친한 사이가 된) 당시 홍보담당자가 이 작품은 꼭 봐야 한다며, 이 배우 좀 보라고 강조 또 강조하던 작품이었어요. (지금은 중견 연출가가 된) 신인 작/연출가 성기웅의 군대를 배경으로 한 연극이었습니다. 군생활을 잘 모르지만, 폐쇄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관계 변화가 꽤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역시 윤진원 역의 배우가 발군이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생을 버릴 것 같던 유약한 인물이 조직에 물들고 변화하는 과정을 아주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었어요. 군대를 다룬 이야기가 강압적인 조직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일상으로 확장되며 공감대를 만들더라구요. 데뷔라고 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이 배우 이야기를 한참 하고 집에 간 기억이 있는데요. 그가 바로 현재 '윤나무'로 활동하는 '김태훈'이었습니다. 학전블루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었지만, <삼등병>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어린이 뮤지컬이 학전의 주요 레퍼토리가 되면서 학전 소식에서 멀어졌습니다.
학전은 꾸준히 새로운 얼굴과 작품을 발굴했습니다. 시도들이 쌓여 역사가 됐죠. 하지만 그 유산을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극단 중심의 창작 방식은 희미해졌고, 굳이 좁은 좌석을 비집고 들어가 공연을 보려는 관객도 줄었습니다. '애정'과 '의미'만으로 살기엔 버거운 세상입니다. 건물주와의 협상이 잘 진행되고 학전의 수혜를 받은 예술인들이 힘을 더해 폐관 수순은 넘겼지만, 얼마나 더 이어질 수 있을까요. 사라지는 것을 붙잡는 힘이 우리에게 과연 있을지, 저는 어쩐지 계속 물음표만 남습니다.
이정은 배우가 '요정식탁'에 나와서 그러시더라구요. 마음의 빚을 나눠 갖자고요. 2월 24일까지는 <고추장 떡볶이>가, 2월 28일부터 3월 14일까지 <학전, 어게인 콘서트>가 학전블루에서 공연됩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티켓이 다 팔렸네요. <학전, 어게인 콘서트> 이후의 소식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저도 제 안의 물음표를 지우고 관심 갖기를 다짐하려 합니다. 사라지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느려질 수 있도록요. 언젠가는 닥쳐올 '사라짐'을 절망하는 대신, '살아있음'을 감각할 수 있게 말이죠. 그러고 보니 '김태훈'인 '윤나무'가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 출연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다가오네요. 생이 여기서 저기로 이어지는 것, 그리하여 선이 아닌 원으로 순환하고 있다는 감각.
학전에 대한 여러분의 기억을 나눠주셔도 좋아요.
2주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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