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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 2010.10.19~11.07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작, 작사: 한아름 / 작곡: 황호준 / 연출: 서재형
출연: 조휘, 김지현, 김대현, 전미도, 안세호, 태국희 등
유난히 기억에 남는 시작들이 있습니다.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도 그중 하나입니다. <왕세자 실종사건>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왕세자가 실종되던 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내관 구동과 나인 자숙이 자리를 이탈한 탓에 용의자로 지목되고,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왕과 중전, 구동과 자숙, 내관과 상궁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드러납니다. 극의 형식상 시공간이 혼재하고 전개가 빠릅니다. 무엇보다 긴박감이 느껴지는 음악과 음향효과, 인물들의 슬로우모션 연출이 인상 깊었던 작품입니다. 2011년에는 경희궁에서도 공연이 됐어요. '구중궁궐'이라는 공간의 힘은 확실히 있었지만, 공연의 규모가 서사보다 비대해서 오히려 몰입이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연극성이 짙은 작품이라, 사실적인 공간이 상상력에 한계를 두게 만든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세자 실종사건>에는 좋은 기억이 더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배우들이에요. 저에게 <왕세자 실종사건>은 곧 '김대현'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서 김대현 배우를 처음 봤어요. 큰 키에 앳되고 어수룩한 얼굴, 환한 미소의 그는 작품 속 구동 그 자체로 느껴졌어요. 한결같고 순수하며 애틋했죠. 구동은 살구를 좋아하는 자숙을 위해 연신 살구나무로 손을 뻗어냅니다. 자신의 마음을 말보다 몸으로 전하는 인물입니다. 작품 속에서도 가장 많이 움직이는 인물인데, 실시간으로 젖어가는 그의 의상을 보며 '에너지가 곧 인물'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하는, 거짓없는 인물로 구동 그리고 배우 김대현을 기억합니다. 그후로도 그의 여러 작품을 봤지만, 여전히 저에게는 <왕세자 실종사건>의 인상이 가장 짙게 남아있습니다.
전미도 배우도 마찬가지였어요. 이전에 뮤지컬 <사춘기>, <영웅>, 연극 <신의 아그네스>를 봤지만, 저에게 전미도의 시작은 <왕세자 실종사건>이었거든요. 자숙은 중전과 함께 궁에 들어와 왕의 승은을 입는 인물입니다. 구동과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죠. <왕세자 실종사건>은 자숙이 구동, 중전, 왕, 상궁이라는 다른 관계 안에서 느끼는 혼돈이 중요한 작품이고, 전미도 배우가 그 중심을 탄탄히 잡아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두 배우가 스펙트럼을 넓혀가며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더욱 반갑게 느껴집니다.
프로그램북을 다시 펼쳐보며, 앞으로도 '사랑에 빠진 첫 순간'을 잘 기억하자 다짐하게 됩니다. 가장 날 것이고 핵심인 감정 같아요. 어떤 판단도 없이 그저 마음이 동하는 순간일 테니까요. 자숙을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오르던 김대현의 구동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하나의 이미지로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기억에 남는 처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왕세자 실종사건>을 2012년 이후로 챙겨보지 못했는데, 그동안 조용하고도 꾸준하게 다양한 관객을 만나고 있었네요. 10월 18일에는 하남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된다고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극장에 찾아가셔도 좋을 듯 합니다.
++ 같은 창작진이 재창작한 음악극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도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이 작품은 2013년 이후 재공연 소식이 없네요. ㅠㅠ 서재형 연출님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 팬이 여기에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