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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2019.12.13~12.21 우란2경
2012년부터 지금까지, 우란문화재단이 개발한 작품들은 빼놓지 않고 최대한 많이 보는 편입니다. 재단 초기, 프로젝트 박스 시야에서 만났던 새로운 창작진들의 신선한 접근은 실제로 스테디셀러가 됐습니다. <어쩌면 해피엔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베르나르다 알바> 그리고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프랑스의 동명 소설을 1인극으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소설은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청년의 심장이 심근염으로 괴로워하던 중년 여성에게로 이식되는 24시간을 그립니다. 이식 과정이 다큐멘터리로 느껴질 정도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요. 그리고 과정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심장 이식'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사람의 행동과 목소리로 가득합니다. 등장인물이 서른 명은 넘을 겁니다. 그런데 연극은 1인극입니다. 사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1인극'의 경험이 드물었습니다. 실제로 공연된 작품이 적기도 했지만, 공연을 봐도 '1인극'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려워서이기도 했을 거예요. 2019년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초연을 준비하던 민새롬 연출가와 손상규 배우 역시 '왜 1인극인가'를 가장 고민했다고 하죠.
연극은 서술자가 심장이식의 전 과정을 보고 경험하고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서술자는 상황을 설명하다 심장 이식 과정 안의 인물이 되어 그들이 느끼는 감정과 말을 전합니다. 파도 위에서 펄떡이는 시몽 랭브르였다가,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토마가 되어 가족들에게 시몽의 장기 기증 의사를 묻기도 합니다. 축구 경기를 보다 심장 적출을 위해 달려가는 의사 비르질리오와 누군가의 죽음으로써 새로운 삶을 맞이하는 끌레르까지. 소설과 연극 모두에는 살아있는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시몽의 심장이 이동할 때 느껴지는 '함께'의 울림이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라도 내가 다른 입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연극만의 몫입니다. 우리가 보는 무대 위 배우는 단 한 명이고, 그는 입장도 역할도 성격도 다른 인물들이 됩니다. 나의 여러 모습이 모두 나인 것처럼, 1인극은 나와 네가 다르지 않다는 진리를 꽤 깊숙하게 남깁니다. 그 연결감에 공연이 끝나고도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혼자가 편하다는 생각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차단했는지, 다르다는 추측으로 얼마나 나와 타인을 비교했는지.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가 남긴 질문들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연극을 본 후 소설을 읽었습니다. 소설도 역시 좋았지만, 연극만큼의 압도적인 감정의 경험은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연극에서 생의 증명을 보았기 때문이겠죠. 저는 여전히 공연을 사랑하고 있나 봅니다. 🤣
그럼,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 오래전 소소하게 공연 리뷰를 남겼던 인스타그램을 조만간 재개하려 합니다. 이쪽은 실시간 리뷰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