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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치어걸을 찾아서> 2010.03.02~03.31 대학로라이브극장
저에게 조승우가 뮤지컬의 세계를 열어준 배우라면, 저를 뮤지컬의 세계로 폭 빠져들게 만든 건 송용진이었습니다. 그를 처음 본 건 2005년 <헤드윅 앤 앵그리인치 콘서트>에서였어요. <헤드윅> 초연은 조승우, 오만석, 김다현, 송용진이 참여했지만, 당시엔 김다현의 헤드윅만 봤던 것 같아요. 그러다 콘서트에서 다른 헤드윅들을 보게 됐습니다. 그중에서도 송용진의 헤드윅은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드는 인물이었고, 그게 저에게는 좀 충격이었습니다. 저 광기는 뭔가 싶었거든요. 🤣 그런데 그 솔직함이 콘서트가 끝나고도 내내 마음에 남았습니다. 아마 제가 갖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 솔직함이 신기하고 어디서부터 나오는지가 궁금해 한동안 그의 공연을 따라다녔습니다. <밴디트>와 <그리스>, <젊음의 행진>과 <펌프보이즈>, <온에어>와 <형제는 용감했다>. (사실 뮤지컬배우가 아닌, 가수 송용진의 클럽 공연도 갔습니다.) 그러다 결국 이 작품까지 만나게 됐죠. <치어걸을 찾아서>입니다.
<치어걸을 찾아서>는 송용진이 제작, 극작, 연출, 음악감독을 맡은 작품입니다. 인디 레이블 '해적'을 운영하던 그는 함께 음악을 하던 딕펑스, 김정우와 뮤지컬을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지구의 모든 여자가 전멸한 어느 때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여성 치어걸을 찾아 기적의 땅 원더랜드로 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때도 지금도 줄거리나 이야기 속 디테일들은 황당무계하지만, 어렵지 않으면서도 신나는 음악이 무대를 지켜보게 했습니다. 이후 김정우는 '톡식'으로 KBS <탑밴드>에 딕펑스는 Mnet <슈퍼스타K 4>에 출연했는데, 낯선 곳에서 익숙한 음악을 듣고 놀랐던 기억도 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참 무모하다 싶으면서도 이런 시도가 가능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요즘도 새로운 뮤지컬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개발되고 공연됩니다. 제작극장이나 재단 주도의 인큐베이팅 사업들도 시작한 지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런데 갈수록 안전한 작품이 선택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제작사 주도의 소극장 창작뮤지컬 시장은 더 노골적입니다. 소재와 형식, 배우의 중복이 몇 년째 계속되며 피로감이 쌓여갑니다. 이제는 수십 개의 작품을 봐도 뭉뚱그려진 채 휘발되곤 합니다. 무대예술 역시 산업이고 자본 시장의 흐름에 맞춘 선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공연 관람 후 짙게 드리워지는 씁쓸함은 어쩔 수 없네요. 16년 전, 공연 없던 월요일 홍대 롤링홀에서 봤던 <치어걸을 찾아서>를 생각하니 그렇습니다. 망하겠다 싶으면서도 일단 해보는 자세. 그것이 얼마나 귀하고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를 알기에 쉽지 않겠지만, 황당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더 만나고 싶어집니다. 저에게도 필요한 태도가 그게 아닐까 싶어요.
또 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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