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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1945> 2017.07.05~2017.07.30 명동예술극장
배삼식 작가의 연극 <1945>는 해방 직후 만주를 배경으로 합니다. 무대에는 조선행 기차를 기다리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선말보다 일본어가 익숙한 어린아이들도, 여동생을 잃은 오빠도, 새로운 짝을 찾는 이들도 있습니다. 약탈과 억압의 시대를 통과해 온 이들에게는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각자의 사연이 있고, 누군가 그 비밀을 궁금해할 때 갈등이 깨어납니다. 연극은 두 젊은 여성 명숙과 미즈코의 이야기로 시작해요. 이들은 '살아있다'라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거짓말과 비도덕적인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겨우 도착한 조선인 전재민 구제소에서도 이들은 거짓 신분으로 지냅니다. 둘은 일본군 '위안부'였고, 미즈코는 일본인이기 때문이죠. 시대와 개인의 비극은 출발 하루 전에 폭로됩니다. 사람들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명숙에게만 손을 내밉니다. 명숙은 자신들을 평가하거나 동정하는 이의 손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리고 지옥을 함께 견딘 미즈코와 다른 길을 떠납니다.
연극에 호명되는 십여 명의 인물들은 대체로 좋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시대의 영향도 있었지만, 어떤 이는 너무 거침이 없어서 또 어떤 이는 너무 답답해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미워할 수가 없었어요. 감정에 너무 솔직한 사람의 다른 면은 충분히 이해할 법했거든요. 명숙의 거짓을 밝혀내려 이들의 짐을 뒤지던 끝순은 집에 가지 못할 거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청산가리를 쥐여준 남성의 아이를 지키려는 미즈코에게는 유일한 다정함을 지키려는 슬픔이 읽혔어요. 누가 누굴 미워할 수 있는 걸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낯선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였을 때의 에너지가 있어요. 경계와 환대가 뒤섞인 이상한 분위기. 저는 그걸 잘 못 견뎌요. 환대는 환대대로, 경계는 경계대로 긴장이 되어서요. 그런데 <1945> 같은 작품(비슷한 결의 뮤지컬로는 <컴프롬 어웨이>와 <타이타닉>이 있겠네요)을 보면 '부대낌'의 밝은 면을 보게 됩니다. 부대꼈기에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고, 같은 이유로 나답지 않은 일을 하며 나의 세계도 넓어진다는 것을요. <1945>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1막 엔딩이었습니다. 끼니를 겨우 해결하던 이들이 각자의 노동을 더해 떡을 만드는 분주함. 좁은 공간에 낯선 이들과 부대끼면서도 기꺼이 서로의 손을 빌려 앞으로 한발 전진하는 그 과정이 내내 기억에 남습니다. 희곡을 다시 읽으며 그 분주한 손놀림을 다시 떠올려봤어요.
8월입니다. 여러분의 2025년 상반기는 어떠셨나요? 저는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자주 싸웠습니다. 뮤지컬 <긴긴밤>에 "누군가와 함께여서 귀찮은 날,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주길 사무치게 바란 날"이라는 대사가 있는데요. 딱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동안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서 편하고, 상황을 통제할 수 있어 안전한 혼자를 택했습니다. 무엇보다 부대끼지 않는다는 게 참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이 혼자만의 무균실임을, 사실은 무균실에서 면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1945>를 다시 꺼내보며 부대낌 안으로 들어가는 다음 단계를 상상해 봅니다. 아직은 그저 그 문만 바라보고 있지만, 언젠가 문을 열게 되겠죠.
더운 날씨에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또 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