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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빨래> 2009.04.28~06.14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작, 연출: 추민주 / 작곡: 민찬홍
출연: 임창정ㆍ홍광호, 조성명ㆍ곽선영, 이정은, 정문성, 이영기, 김희창 등
뮤지컬 <빨래>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습니다. 2003년 한예종 졸업작품에서 시작한 작품은 2005년 본공연 초연 이후 줄곧 공연되며, 현재는 31번째 시즌 공연이 진행 중입니다. 저 역시도 <빨래>를 여러 번 봤지만, 마지막 관람이 2013년이었더라구요.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빨래>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아가는 여러 인물의 현재를 그립니다. 강원도에서 온 나영은 부당한 대우를 견디며 서점에서 일합니다. 몽골에서 온 솔롱고는 서울의 모든 것이 낯설죠. 주인할매는 아픈 딸과 평생을 살아왔고, 희정엄마도 외로움 대신 선택한 사랑 때문에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이들의 고민은 일상적이고, 무엇보다 아주 익숙했습니다. 고향을 떠나온 이라면 떠나온 대로 공감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직장과 가족이라는 작은 세계는 언제나 크고 작은 갈등들로 가득하니까요. 작품은 각자의 세계를 지키던 이들이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얽히면서 풀려나갑니다. 호기심과 오지랖, 농담 위로 공감과 연민, 사랑이 자라납니다.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좁은 방에 고립되었던 나영 역시 이들과의 관계 맺음으로 세계를 넓혀갑니다.
오래된 작품에서 가장 즐거운 부분은 누군가의 성장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20년간 많은 배우가 거쳐갔어요. 공연예술 시장을 이끄는 배우들이 됐고, 그중에서는 영상매체에서도 자신의 인장을 명확히 찍은 배우들도 있죠. 얼핏 찾아봐도 스무 명은 훌쩍 넘더라고요.
김재범, 박호산, 박정표, 이규형, 홍광호, 정문성, 김경수, 김대현, 배두훈 곽선영, 강연정, 이지숙, 나하나, 감지혜, 김주연 이정은, 이봉련, 김국희, 김아영, 허순미 김지훈, 류제윤, 최호중
나영과 솔롱고는 나이가 들며 '주인할매'와 '빵'의 자리로 옮겨가기도 했습니다. 배우들이 배역을 바꿔서까지도 작품에 참여하는 건 역시 <빨래>가 가진 보편성과 역사 때문일 겁니다.
21년째 서울에서 살고 있는 저 역시, 처음에는 망망대해에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힘든데 뭐가 힘든지도 잘 모르겠고, 무엇보다 그 어려움을 말할 상대가 없어서 괴로움들이 안으로만 깊게 쌓였습니다. 직장 동료들과 가까워지고 일로 만나는 관계들이 늘어나며 제 생활도 단단해졌지만, 모든 것이 '일' 중심이었다는 게 큰 맹점이었죠. '동네'와 '이웃'의 힘을 느끼도록 도운 것은 2022년에 입양한 반려견이었습니다. 산책길에서 동네 주민들과 인사를 하며 웃는 횟수가 늘었어요. 저와 반려견을 환대 해주는 이웃들과 위기상황일 때 먼저 손 내미는 분들 덕분에, 요즘 저의 서울살이는 꽤 멋지고 즐겁답니다.
날이 부쩍 추워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그럼,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