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햄릿>은 더욱 다양한 버전으로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여전히 가장 깊게 기억하는 <햄릿>은 2016년 7월에 공연된 손진책 연출가 버전의 <햄릿>입니다. 당시 전무송, 박정자, 유인촌, 김성녀 등 모든 캐릭터를 노년을 향해 가는 배우들이 맡아서 화제를 모았죠. 당시 평균연령 68.2세, 연기 경력은 자그마치 900년이었습니다. 이후 이 버전은 젊은 배우들이 합류하며 계속 되고있습니다. 공연이라는 형식적 차원에서 지금 버전이 더 안정적이고 속도감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역시 2016년의 <햄릿>이 더 기억에 남아요. 당시 <햄릿>의 객석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 위에 있었습니다. 마치 그리스의 원형극장과 같은 구조로, 배우들은 객석과 객석 사이에서 등장하고 퇴장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버전의 백미는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무대의 거대한 벽이 들어 올려졌을 때입니다. 관객은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텅 빈 객석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세상은 무대, 인간은 배우"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떠올리게 돼요.
원작을 대대적으로 수정한 서울시극단의 <함익>과 국립극단의 <햄릿>도 있습니다. 각각 각색을 맡은 김은성, 정진새 작가 모두 햄릿을 여성으로 재해석했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김은성 작가의 <함익>은 달라진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현대를 배경으로 한 재창작에 가까운 버전이었습니다. 햄릿의 고독을 주로 다뤘고 그 과정에서 사랑이 짙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아요.
정진새 작가의 <햄릿>은 여성 햄릿 외에도,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뭉개진 채 공표된다는 측면에서 동시대의 아픔을 마주하기도 했습니다. 이 버전의 <햄릿>은 2021년과 2024년에 제작되었습니다. 2021년의 공연은 당시 가장 주목받는 작품이었으나 코로나19로 실제 관객을 만나지 못하고 온라인에만 남은 버전입니다. 그리고 3년 후, 2024년에는 실제 관객을 만났습니다. 두 버전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무대미술입니다. 2021의 여신동 시노그라퍼는 흙을, 2024년의 박상봉 시노그라퍼는 물을 썼습니다. 흙이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면, 물은 투명하게 드러냄으로써 복수의 무의미함을 표현하지 않았나 싶어요. 아주 공교롭게도 두 창작진이 올해 5월, 연극 <헤다 가블러>의 무대미술을 담당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네요.
하나의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계속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놀랍습니다. 그게 또 공연만의 매력이겠죠. 오늘은 어떻게 다를까를 고민하며 극장에 갑니다.
또 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