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뮤지컬배우를 두고 '극한직업'이라고 합니다. 노래와 춤, 연기를 동시에 해야 하고, 짧게는 10회부터 길게는 100회까지 라이브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작품이 '액터 뮤지션 뮤지컬' 형식이라면 배우들에게는 더 큰 각오가 필요합니다. 악기 연주까지 더해지기 때문이죠. 오케스트라 피트도, 지휘자도 없는 공연이 액터 뮤지션 뮤지컬입니다.
2011년에 초연된 뮤지컬 <모비딕>은 창작뮤지컬로는 처음으로 '액터 뮤지션 뮤지컬'을 시도한 작품입니다. 왜 이런 형식이 필요했을까요? 당시 해외에서 활발하게 시도되던 새로운 형식이기도 했지만, 이 작품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돼요. 허먼 멜빌의 『모비딕』은 고래에게 다리를 잃은 선장이 복수를 위해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입니다. 바다 위 피쿼드호는, 일렁이는 파도와 피쿼드호를 공격하는 고래는 무대에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요.
뮤지컬의 음악이 많은 부분을 표현하지만, 작품은 해당 음악을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는 것으로 한계를 돌파합니다. 각자가 맡은 악기들은 그 자체로 캐릭터의 외형과 성격을 단번에 설명했어요. 첼로의 엔드핀은 에이헙 선장의 의족이 되고, 퀴케그는 바이올린 활을 작살처럼 사용합니다. 더블베이스는 바다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지는 고래의 소리를, 어쿠스틱 기타는 선장과 대립하면서도 끝내 그를 연민하는 스타벅의 성격을 따뜻한 소리로 표현합니다. 언어가 다른 인물들이 연주를 함께하며 가까워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며 하모니를 이룰 때, 관객은 '공존'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마주하게 됩니다.
많은 콘텐츠가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개됩니다. 웹툰이 드라마로, 영화가 뮤지컬로, 소설이 연극으로. 소설이 소설이라는 그릇을 선택한 이유가 있듯, 다른 매체의 콘텐츠가 공연예술이 될 때는 공연이어야만 하는 뚜렷한 길이 제시되어야 해요. <모비딕>은 '액터-뮤지션'이라는 형식을 통해 이를 아주 탁월하게 증명한 셈이죠. 새로운 형식에 이끌려 2011년 두산아트랩부터 초연, 재연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본 기억이 있습니다. 2012년 공연 이후로 <원스>와 <그레잇 코멧>, <조로: 액터 뮤지션> 같은 또 다른 액터-뮤지션 뮤지컬이 소개됐지만, <모비딕>의 소식은 들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합니다. 시도가 지속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혹은 좋은 기억과 그리움으로만 남겨지는 게 나을까요?
또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