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해피엔딩>은 2014년에 개발을 시작한 작품입니다. 당시 뮤지컬에서 '로봇'이라는 소재는 낯설었지만, 버림받은 로봇들의 사랑이야기는 꽤 깊은 울림으로 남았어요. 효율과 개인에 포커싱된 시대여서였는지 상처받으면서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는 더욱 가치 있게 느껴졌어요.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5년 전미도-정욱진-고훈정 캐스팅의 트라이아웃 공연을 시작으로, 거의 매년 재공연이 됐습니다. 그리고 2020년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주목받은 전미도 배우가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다시 돌아오며 이 작품은 훨씬 더 대중적인 사랑을 받게 됐어요. 공연 시작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어쩌면 해피엔딩>이 토니상의 주인공이 되었네요. 킵고잉의 자세를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배우게 됩니다.
지난해 <Maybe Happy Ending>을 브로드웨이에 올리자마자 <고스트 베이커리> 초연을 위해 한국에 온 두 사람과 꽤 긴 인터뷰를 했어요. 한국 버전과는 다른 상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어 긴장과 설렘 사이를 오가고 있었죠. 그중에서도 다양한 언어와 세대의 관객들이 모이는 브로드웨이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이 가진 섬세한 감정과 사회문화적 맥락이 잘 전달될지 모르겠다며 걱정하던 것도 기억이 나요.
<어쩌면 해피엔딩>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는 감정들을 집요하게 찾아내 완성한 문장들로 가득합니다. 저는 매번 'Goodbye, My room'에서 무장해제가 되곤 해요. 올리버와 클레어가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제주도로 떠나기 전, 각자의 방에서 부르는 넘버인데요. "외롭고 불안했던 그 밤, 웅크린 채 여기 앉아 밤새 울었던 그때 내 모습은 너만 아는 비밀로 해줘"를 들을 때면 혼자 막 서울에 올라와 어찌할 바를 모르던 시절의 제가 자꾸 떠올라요. 공연이 무대에서 자신의 얼굴을 찾는 일이라고 한다면, 제 얼굴은 바로 그 장면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방인으로 뉴욕 어딘가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박천휴 작가의 하루도 저 가사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의 얼굴은 어디에 있나요? 그 얼굴을
공유해주셔도 좋겠습니다. :)
<어쩌면 해피엔딩>의 수상이 기쁜 건, 작품에서 알아챈 마음들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움과 외로움, 불안과 불신 끝에 마주하는 따뜻함을 생각합니다. 모두의 밤도 평안하기를.
또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