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언제까지 하고 싶으세요?
저는 가능하면 얼른 그만두고 싶지만, 해야 한다면 60살 정도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냥 그 정도에 다들 은퇴를 하니, 막연하게 그쯤일 거라고 짐작했다는 게 더 정확하겠네요.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어요. 비슷한 의미로 남은 생이 너무 지루할 것 같아서 오래 살고 싶지 않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생의 많은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를 시간이 갈수록 체감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이 더욱 짙어진 것은 10월의 막바지, 무대에 선 선생님들 덕분이었습니다. 요즘 tvN <정년이>로 '여성국극'에 대한 이야기가 많죠. 1세대 여성국극 명인 조영숙 선생님께서 자신을 주제로 한 <조 도깨비 영숙>으로 국악 부문 이데일리 문화대상을 받으셨어요. 뮤지컬 부문 심사위원을 맡고 있어서 시상식 현장에 있었는데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정중앙, 90세의 선생님께서 평생을 바쳐온 예술에 대한 소회를 밝히시는 모습이 아주 뭉클했습니다. 오래도록 인정받지 못했던 시간을 떠올리면, 더욱 그랬고요. 여성국극의 부활을 늘 꿈꾸셨겠죠. 하지만 상상과 현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각의 크기가 다르다는 걸 무대에 선 선생님을 보고 느끼게 됐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74세의 김성녀 선생님의 <벽 속의 요정>을 봤습니다. 55세에 시작해 74세까지, 2시간 20분짜리 1인극을 20년간 쉬지 않고 해왔다니. 쌓인 시간만으로도 놀라웠지만, 작품을 대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더 깊게 남았어요. 공연 시작 전 말씀하셨습니다. 나이테가 많아져 20년 전만큼은 아니겠지만, 나이테만큼 해보겠다고. 그러니 너그럽게 봐달라고. 공연을 무사히 마치신 후에도 말씀하셨어요. 대사를 잊을까 봐, 노래의 음이 부정확할까 봐 너무 긴장했다고. 두 손을 곱게 모으고 불안했던 시간을 고백하는 배우는 정말이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여전히 작품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는 배우의 욕망이 반짝거리고 있었어요.
자신의 나이테 그대로, 불안과 자신감도 모두 내보이며 무대에 존재하는 분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냈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이란 사라지지 않는 거구나. 사회의 평판이나 인정, 자기만족을 넘어서는 주어진 일에 대한 감사, 같은 것을 공유하는 이들과의 호흡이 일의 동력이 되기도 하는구나. 그것이 나의 존재를 또렷하게 한다는 것까지. 그런 일이라면 나도 계속 하고 싶다, 라는 마음이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저 경제적인 가치에만 매몰되어 있던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불평하지 말고 다시 일하러 가야겠습니다. 🤣
날이 쌀쌀해지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 사진은 2019년 일본 하코다테 여행 중 한 킷사텐에서 찍은 것입니다. 우연히 들어간 곳이었는데, 사장님 내외가 재즈 마니아셨어요. 다양한 컬렉션 중 80년대 서울에서 본 재즈 공연 티켓을 보여주셨어요. 오래된 것들의 힘을 생각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