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 대해서만큼은 수십 개의 글을 쓸 수 있습니다(아님). 2007년부터 시즌을 쭉 따라가며 작품과 함께 성장하는 맛을 처음으로 알게 됐고, 볼 때마다 다른 인물과 상황, 주제와 사랑에 빠져 그 생각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정말 정말 좋아해서 처음으로 <맨 오브 라만차>에 대한 글을 써야 했을 때,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보는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몰라요. 잘 쓰고 싶어서요. 여전히 오버추어의 트럼펫 소리에 소름이 돋고, 가장 배우고 싶은 춤이 플라멩코일 정도입니다. 심지어 반려견 이름도 산초로 지었으니 뭐 말 다했죠.
연극을 하며 변화하는 이야기라서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맨 오브 라만차>는 소설 『돈키호테』를 원작으로 하지만, 작가인 세르반테스가 종교 재판을 기다리며 죄수들과 함께 자신이 쓴 희곡을 공연하는 구조입니다. 말 못 하고 눌러둔 감정들을 자신과 닮은 캐릭터의 대사에 담아 내뱉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타인의 사정을 지켜봄으로써 상대를 이해하고, 낯선 존재들이 관계 맺으며 결핍을 채우는 과정이 담겨있습니다. 가짜 수염을 붙이면 늙은 기사가 되고 작은 칸막이 하나로 성당이 되는, 함께 상상함으로써 만들어내는 환상의 세계도 있고요. 제가 좋아하는 공연예술의 매력이 <맨 오브 라만차>에 가득합니다.
이야기가 좀 셌는데요. 오늘은 목표에 대해 이야기하려 <맨 오브 라만차>를 꺼냈어요. 저는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안 세운지 꽤 오래됐어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 때문이기도, '세워봤자 내 맘대로 되는 게 없지'라는 염세적인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은 목표를 세우면서까지 이루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어서에 더 가깝습니다. 2024년에는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완전히 처음 해보는 걸 해보자 정도의 러프한 계획은 있지만, 그마저도 굉장히 소소한 수준입니다. 그러다 이렇게 있다가는 익숙함에 짓눌려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지겠다 싶더라고요. 어렵게 운전면허를 땄지만, 돈도 차도 갈 곳도 없다는 핑계로 그동안 운전 한번을 안 했거든요.
그래서 쉰에는 직접 운전해서 라만차에 가려합니다. 언젠가는 라만차에 갈 거라고 얘기하면서도, 여러 도시와 나라를 여행하면서도 실제로 시도한 적이 없었어요. 이제는 정말 가야겠습니다. 그래도 말로 뱉어두면 하게 되겠죠(하겠지;) 올해 마흔둘이니 8년이 남았네요. 그동안 돈도 좀 모으고, 체력도 더 기르고, 연수받고 국내 곳곳을 운전해 보고, 스몰토크와 긴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영어회화도 익혀보려고요. 산초랑 같이 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굉장하겠다 싶네요. 'ST'형 인간이라 버석거리지만,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 직접 운전하는 50살의 저를 상상해 봅니다. 건강했으면, 즐거웠으면, 무엇보다도 불안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8년 길어 보이지만, 또 눈 깜짝할 사이니까 진짜로 소식 전할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
우연하게도 지난 금요일에 마흔이 된 박나래와 쉰을 앞둔 김숙의 삶을 <나 혼자 산다>에서 보게 되었어요. 남 눈치 보지 않고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도 가까운 사람들을 챙기는 모습에, 호방하게 90개의 초를 한 번에 끄는 모습에 많이 웃고 또 많이 뭉클했습니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서로가 서로의 힘이 되는 거겠죠. 저의 목표도 누군가에게 또 다른 시작을 다짐하게 되는 무언가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2주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선선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을 만끽하는 하루하루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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