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요즘, 연극과 뮤지컬이 대세입니다. 손석구와 전도연, 유승호와 박성웅, 민호를 연극무대를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묵찌빠 아저씨'가 된 최재림은 서브웨이 CF를 찍고, 온갖 작품의 캐스팅 뉴스에 제일 먼저 뜨더라고요. 뮤지컬 <킹키부츠>는 '쥐롤라'의 활약으로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의 환호가 매회 쏟아집니다. 훌륭하게 마무리된 작품도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작품들도 사실은 많습니다.
대체로 저는 조화롭지 않은 작품을 보면 속이 상합니다. 인지도의 높고 낮음을 떠나 배우가 인물이 아닌 본인으로만 머물러 극에 섞이지 않을 때, 설령 그가 인생 연기를 펼친다 해도 실망스럽더라고요. 연습과 공연을 최소 3주씩만 잡아도 6주인데, 단 하나의 희곡을 반복하는 공연예술에서 유달리 누군가만 돋보인다? 공연예술의 방식이 낯설 수도, 맡은 캐릭터가 독특해서일 수도, 생각하는 작품의 방향성이 달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뭐가 됐든 결국은 연습 부족이다 싶습니다. 공연예술이라서 더욱 그런 것 같아요. 무대 위와 아래의 모두가 하나의 세계관을 편집 없이 지금, 함께 그려야 하는 매체이고, 얼마나 경험하느냐에 따라 완성도는 다를 테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앙상블이 좋은 작품을 만나면 독특한 서사나 유명한 배우가 없어도 그 자체로 감동하게 돼요. 최근에는 뮤지컬 <조로: 액터뮤지션>이 그랬습니다. 배우의 일부가 연주도 맡는 형식이라 서로가 서로를 예민하게 관찰하고 반응해야만 했어요. 오가는 시선이 만드는 높은 집중력과 섬세한 호흡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대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해 점점 다가오는 플라멩코 리듬과 소리들, 동작에 맞춰 거세게 펄럭이는 의상들과 환호들. 편집 없는 매체라 종종 무대 위 액션장면이 허술해 보일 때가 많은데,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10분은 훌쩍 넘어 보이는 조로와 라몬의 검술 장면도 아주 긴박했습니다. 배우들의 땀으로 의상 색깔이 실시간으로 짙어지는 것을 보면서 오랜만에 라이브의 힘을 강하게 느끼고 왔습니다. 정공법을 쓰기까지의 고민이, 연습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싶기도 하더라고요. 어쩌면 무대 위의 땀들이 나태한 스스로를 구박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저를 향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 기억한 것도 같아요.
무언가에게 온 마음과 시간을 쏟았던 때가 있습니다. 즐거움만 기억되면 좋으련만 괴로움도 깊이 남아, 많은 것에 거리를 두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다시 기꺼이 땀을 흘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생각 말고 일단 GO'가 더 중요하겠죠. 그런데 언제나 그 GO가 가장 어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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