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이 시작됐습니다. 평소 스포츠에 관심이 없어도 이때만큼은 전 세계 모두가 스포츠인이 됩니다. 저도 분위기에 휩쓸려 챙겨보곤 했는데, 이때의 관심이 길게 이어지진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개회식은 좀 다릅니다.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사회와 태도가 집약된 이벤트는 언제나 경이로웠어요. '제대로 보고 싶다'고 느낀 건 역시 2012년 런던 올림픽이었습니다. '대니 보이'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서프러제트 운동과 NHS, 제임스 본드와 J.K.롤링,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퀸. 이게 브리티시 인베이전이지 뭐야 싶더라고요. (뉴스레터 쓰느라 다시 봤는데, 12년 전 이벤트인데도 대단하다 싶네요)
2024 파리 올림픽의 개회식도 여러모로 화제가 됐죠. 최초의 야외 개회식,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주제, 그리하여 누군가에게는 낯설기도 한. 섹션의 주제와 참여 아티스트, 공간을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올림픽은 에펠탑과 그랑 레 등 파리의 랜드마크에서 경기와 행사가 진행되는 터라 개회식이 그야말로 거대한 파리 관광 홍보 필름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대체로 메가 이벤트가 '홍보의 장'이긴 하지만요.
'박애' 섹션에서는 프랑스의 여성들이 소개됐습니다. 짧게 지나가는 영상 중 '낙태 합법화'라는 설명이 귀에 박혔습니다. 시몬 베유가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 10명의 위인으로 뽑혔습니다. 프랑스의 임신중지 운동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은데, 왜지? 싶었어요. 1971년 프랑스에서는 343명의 여성이 자신의 실명과 주소를 공개하고 진보진영 잡지에 '나는 낙태했다'고 선언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반대 입장에서는 이들을 '창녀'라고 불렀지만, 시몬 베유는 임신중지 합법화를 추진해 4년 후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사실 전 몰랐던 내용이었어요. 이 역사를 알게 된 건 2019년에 공연된 연극 <344명의 썅년들> 덕분이었습니다. 한창 국내에서도 낙태죄 폐기 운동이 활발하던 때였어요. 극단 Y는 3건의 프랑스 실화를 바탕으로 연극을 만들었습니다. 생명윤리와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의 고민과 갈등은 극 안에서도 짙었어요.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억지 주장들에 어이가 없던 기억도 나네요. (그나저나 3공 소식 없는지 궁금하네요.)
저 역시 가임기 여성이기에 '임신'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있다고 해도 '임신'이 모든 여성에게 축복인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임신중지'가 제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었어요. 그렇지 않다는 걸 <344명의 썅년들>을 보며 인지했는데, 어느새 5년이 흘러서 흐려졌네요. 다시 생각의 길을 잘 잡아야겠어요. 올림픽 개회식을 보며 '임신중지'를 떠올릴 줄은 몰랐습니다. ㅎㅎ
어떤 올림픽이든 마냥 다 좋을 수만은 없지요.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아시아인은 쏙 빠진 구성, 국가마다 다른 입장 보트, 퀴어와 페미니스트 영상에는 조용하던 국내 방송의 캐스터들. 그래도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는 잘 찾아보려고 합니다. 2024 파리 올림픽은 다르다고 여겨지는 것들의 연결에 집중하고 있어요. 성화봉은 서로 다른 소재로 제작되어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아우르고, 여성과 남성 선수는 동일한 수가 되었습니다. 같이 보고 싶은 영상이 있어요. 과거 2024 파리 패럴림픽 홍보를 위해 프랑스의 안무가 사덱 와프가 126명의 장애, 비장애인들과 함께한 안무 영상입니다. 올림픽은,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아닐까 생각해 봐요.
장마가 지나면 엄청난 더위가 온다고 합니다.
다들 열사병과 냉방병 조심하세요.
그럼 2주 후에 다시 올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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