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지에 적었던 것처럼, 5월 17-18일에 광주를 다녀왔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예상보다 더 많은 것을 짧은 시간에 하고 왔습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전야제를 극장 가는 길에 보게 됐어요. 당시에는 소년과 청년이었을, 지금은 장년과 노년이 된 풍물단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행진하는 무리 사이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깃발이 높게 나부꼈어요. 광주교육청과 제주의 깃발도 보였는데요. 저의 삶과 연결된 깃발을 봤다면, 아주 반가웠을 것 같아요. 2016-17 촛불시위 당시 비공식적 깃발이 왜 그렇게 많은지 궁금하고 웃기기만 했는데, '민주묘총'이나 '무도 본방 사수위원회'에 담긴 마음이 이제는 더 와닿기도 합니다.
광주 여행의 목적은 이머시브 시어터 <나는 광주에 없었다>였는데요. 1980년 5월, 관객이 시민군이 되어 배우들과 열흘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작품입니다. 경계가 허물어진 무대에서 관객은 같이 노래하고 바리게이트를 치고 행진합니다. 사실 관객 참여 공연을 보러 갈 때마다 '적극적으로 해야지'라고 다짐하지만 쭈뼛대는 편입니다. 누가 먼저 시작해야 그나마 용기가 생겨요. 아마도 다수가 그렇겠죠.
그래서 <나는 광주에 없었다>의 시작이 참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배우와 관객도, 관객과 관객 사이도 데면데면할 때 "생일에 5가 들어가는 사람"을 찾습니다. 다음에는 1, 그다음에는 8. 생년월일 8개의 숫자 중 5,1,8이 들어갈 확률은 꽤 높죠.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꽤 많은 수의 관객이 무대로 나와 여러 개의 원을 만들어 움직입니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앞으로, 뒤로. 한창 흥이 오를 즈음, 들립니다. 점점 가까워지는 군화 소리가. 함께 있다가 흩어진 경험이 관객을 이야기 안으로 훅 끌고 들어갑니다. 광주에 없었던 시절을 감각하는 경험, 완벽한 몰입을 위해 구현된 동선과 소품들, 공간의 활용 모두 인상적인 작품이라 '서울에서도 보고 싶다'와 '이걸 보러 광주에 와야지'라는 마음이 끊임없이 싸우던 시간이었어요.
2시간 가까운 공연에 참여하며 관객의 힘을 생각하게 됐어요.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다가도 종종 현실로 빠져나올 때가 있었는데요. 그때마다 저를 붙잡은 것은 제 옆의 관객이었어요. 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공연에 참여하고 있었어요. '남행열차'를 부를 때는 추임새를 넣고, 그 누구보다 크게 웃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그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도 웃음이 나고 힘이 생기고 더 소리 높이게 되더라고요. 그중 한 친구가 실제 경험을 나누는 시간에 가장 먼저 손을 들고 자신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냈어요. 군인이셨던 할아버지가 군복을 벗고 시민군으로 활약했다고. 이마와 머리카락에 송골송골 맺힌 땀과 자랑스러워하는 웃는 얼굴이 지금도 떠오르네요. 동료들과 함께 경상도에서 오셨다는 소방공무원 분은 "국민을 지켜야 하는 소방과 경찰, 군인이 그렇지 못했다"며 참 많이도 우셨습니다.
다양한 관객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이거 언제 끝나냐면서도 같이 박수를 치고, 쭈뼛대면서도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무대로 나오진 않아도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 교복 입은 청소년, 수녀님,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조합원,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 다르지만 함께하는 이들의 면면을 통해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삶을 향한 응원을 더욱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혼자'일 때는 알 수 없는 게 '같이'일 때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요. 다녀오길 잘했다 생각합니다.
지난번 편지에 의견 남겨주신 분이 계셨어요.
☘️ 위선이란 단어에 이끌려 의견을 남겨봐요. 예전에는 좋지 않은 단어라는 인식이었는데 차라리 위선이 낫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인 것 같아요. 제가 재밌게 읽은 '다정소감'이라는 책에 "가식이어도 위악보다 위선이 낫다, 어쨌든 선으로 남으니까"라는 문장이 있는데 기자님께 이 문장을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 또한 큰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동형 공연에 참여하시는 이유도 뭉클하게 다가오네요. 그 마음을 응원합니다. 지치는 하루였는데 좋은 글에서 좋은 기운 얻어가요. 감사합니다 :)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저의 이야기가 종종 혼잣말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게 저를 불안하게 하곤 했는데, 이 의견에 힘입어 광주도 다녀온 것 같습니다.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주 후에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