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는 운전면허를 취득했습니다. 운전을 하지 않는 이유도 해야만 하는 이유도 많았지만, 결정적으로 도전이 두려워서 시작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우여곡절 끝에 시작했고, 역시나 불안불안하게 도로에 차를 끌고 나오니 수시로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안되는 걸 계속하라는 강사님께 화도 냈네요. 못하는 나를 싫어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남 탓을 하는 지경까지 이르니 그게 또 너무 싫더라고요. 엉망진창 속에서도 작은 장점을 발견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 다른 강사님의 칭찬과 셔틀버스 기사님의 응원과 "두 번은 떨어지는 게 예의지"라는 친구의 위로와 상대적으로 쉬운 코스 당첨의 운으로 2주 만에 합격했습니다. (이게 맞나 싶기도 합니다만...)
겁을 내다가도 도로주행 연습을 시작하면 운전의 재미를 찾는다는데, 저는 한 차례 도로주행 시험에서 떨어진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탈락과 재시험 사이에 벚꽃이 폈거든요. 운전석에서 보이는 풍경이 삭막함에서 화사함이 되었습니다. 매번 뒷자리에서 풍경을 봐왔는데, 운전석에서 보니 시야가 넓어서 시원시원하고 선명해서 아주 아름답더라고요. 아,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거구나. 그제야 제 도전에 스스로 박수를 칠 수 있었습니다.
때마침 도전자의 공연을 보게 됐어요. 뮤지컬 <일 테노레>예요. 개인의 삶이 사치이던 시절, 꿈꾸던 이들을 다룬 작품입니다. 이미 겨울에 박은태-박지연-전재홍 배우 캐스팅으로 본 작품이기도 했어요. 눈부신 장점도 있었지만, 저의 소감은 불호에 가까웠습니다. 배우의 실력과는 무관하게, 배우의 이미지 때문이었어요. 어쩐지 박은태의 이선은 무난히 일 테노레가 됐을 것 같았어요. 누구도 그의 꿈을 무시하지 않고 그래서 주눅 들지도 않았을 것 같은. 그래서인지 시도는 좋았지만 아쉽다는 인상이 진했어요. 그런 인상을 지운 것이 서경수의 이선이었습니다.
저에게 서경수라는 배우의 이미지는 밉지 않은 뻔뻔함으로 무장한 장난꾸러기에 가까워요. 클래식과 비극이 점령한 뮤지컬 판에서 흔치 않은 배우죠. <트레이스 유>나 <킹키부츠> 등에서 보여준 배우의 이미지가 흥겹지만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어 <일 테노레>에 어울릴까? 라는 걱정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오히려 더 잘 어울리더라고요. 우연히 듣게 된 오페라 아리아에 홀리고, 새롭게 배우고, 더 잘하고 싶어 힘을 내고, 기어이 무대를 완성해 가는 모습. 종종 이선의 과정이 <일 테노레> 무대에 서기까지의 배우 서경수의 삶처럼 느껴지곤 했어요. 배우와 캐릭터의 삶이 꼭 같아야 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둘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픽션 속에서 진심을 발견할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것만큼은 사실이라고 믿고 있어요. 인물의 삶을 표현하지만, 결국 그 인물을 통과하는 몸은 배우 개인이니까요.
저는 배우와 캐릭터가 교차하는 미묘한 순간이 참 좋아요. 기존에 알던 것과 다를수록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저에게 '새로움'은 '두려움'에 가까워요. 낯설고 긴장되고 서툰 것. 저는 불안의 요소들을 마주할 때 쉽게 포기하지만, 어떻게든 다음 혹은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과 행동을 발견할 때면 늘 놀랍고 부럽습니다. 그래서 희열이 느껴지나봐요. 익숙한 것의 유혹을 떨치고, 수시로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기꺼이 선택하다니! 이런 생각들은 회피성 인간인 저의 추측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대 위 배우의 다른 면을 본 것만큼은 확실하니까, <일 테노레>를 서경수의 성공적인 도전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저도 크고 작은 도전들을 해볼 수 있을까요?
어쩐지 또 무거운 편지가 된 것도 같네요. ㅎㅎ
2주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