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24년 1월 1일에 인사드립니다.
2023년이 지나가기 전에 '뭐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결국 2024년에 첫 번째 메일을 보내게 되었어요. 공연 없는 월요일에 보내겠다고 했지만, 공교롭게도 오늘은 공연이 있는 날이기도 하네요. :) 사실 저는 연말연초의 감각이 무딘 편입니다. '연말 결산' 류의 원고를 청탁받는 일이 아니라면, 그저 1년에 몇 편의 공연을 봤는지를 세는 정도로 넘어가는 편이에요. (올해는 81편을 보았네요) 어쩐지 들뜨는 기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더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생각하며 살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다 2023년 12월 31일에 연극 <템플>을 보며, 이걸로 2023년을 마무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템플>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어린 시절 내내 차별받고 공동체에서 배제되었다가 있는 그대로를 수용해주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깨닫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템플>을 채우는 것은 인정, 위로, 믿음, 사랑, 성장, 이런 것들이에요. 모두 소중한 가치들이고 타인이나 작품에는 자주 써왔지만, 어쩐지 낯간지러워서 스스로에게는 잘 쓰지 않은 단어들이에요. 무언가를 해내도 '해내야 했던 일'이니까 인정하지 않았고, 어떤 일에 상처를 받아도 '그럴 만했다'고 위로하지 않았어요. 스스로를 의심하는 '내가 뭐라고' 병은 여전하고, 무엇을 사랑으로 불러야 할지도 모를 때가 더 많아요. 하지만 언제나 마음 한쪽에는 정반대를 향한 욕구가 있었을 테죠. 그것을 외면한 것은 스스로였고요. 그래서였을까요.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보려는 템플과 그런 그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기다려주고 안아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특별한 개인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아닌 척했지만, 사실은 저에게도 한해를 잘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연말의 감각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2019년에 봤던 때와는 달리, 작품이 더욱 와닿았던 건 아니었을까 싶어요.
"지붕으로 통하는 그 조그한 나무문은 내가 한 걸음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상징했습니다. 우리 모두 그 문을 넘어 나아가려면 자신 앞에 놓여있는 도전과 책임들을 이겨낼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니까. 우린 그 믿음을 가지고 여러 두려운 상황들을 부딪치고 이겨내어 그 문에 도달해야 합니다."
연극 <템플> 中
2024년에 저는 템플처럼 문에 도달해 보려고 합니다. 어떤 문일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일단 공연은 많이 보려고요. 한동안은 공연들이 시큰둥했어요. 뭘 봐도 다 비슷비슷해 보이고, 육체적으로 힘들고 지루하다는 느낌이 오래도록 저를 지배했는데요. 최근, 좋은 공연은 어디에나 여전히 있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언제나 공연을 통해 나와 타인, 사회를 배우는 사람이거든요.
ps. 2024년 첫 관극작품은 무엇인가요?
저는 오랜만에 뮤지컬 <키다리아저씨>를 다시 보러 가요. :) |